스타트업에서 7년간 일을 했습니다. 그 사이에 코로나가 있었고, 3번의 대선이 있었고, AI가 모든 것을 뒤덮었습니다. 그 동안 거의 서울에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스스로 계획해서 해외를 간다는 것이 스스로 생경하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러다가 카메라를 사게 되면서 조금씩 스스로 여행을 가기 시작했는데요. 그러자 조금씩 초조함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게 무한정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고,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퇴사를 하기로 했고,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행선지를 정하지 않은 여행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퇴직금을 쥐고 무작정 날아왔습니다. 가능한한 오래 길 위에 있고 싶었어요.
그런 게 가능하려면 길 위에서 돈을 벌 수 있어야 했습니다. 제가 해온 일이 개발 일이기 때문에... 맥북 하나 매고 떠났었습니다. 어떻게든 조금씩이라도 벌어 보려구요. 맥북이면 충분할 줄 알았지만, 제 나이와 허리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하더군요. 그래서 노마드 생활을 위한 셋업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건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화면이 고개를 숙이지 않고 편하게 볼 수 있는 높이일 것
2. 접어서 부피를 줄일 수 있을 것
3. 가능한 모든 것은 무선으로 할 것
이 셋업을 소개하는 것으로 블로그를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앞으로 여기에 올라올 것들도 다 이 셋업을 이용해 만드는 것들일 것이고, 어떻게 보면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가장 상징적으로 담은 것이 이 셋업이라고 생각해서요.
아래가 전체 펼쳐놓은 모습입니다.


(스탠드는 숙소 가구입니다.)
생각보다 별건 없지만... 하나하나 고른 결과이고 스스로는 만족 중이랍니다. 하나씩 소개해 볼게요.
우선은 모니터입니다.


LG의 그램 +view 라는 제품입니다. 이제는 비슷한 제품들이 많이 나왔지만, 여전히 훌륭한 옵션이라고 생각합니다. 16인치의 IPS 패널, WQXGA(2560 x 1600) 해상도, P3 99%지원입니다. USB Type C를 이용해 전력과 영상을 함께 공급합니다.
13인치, 14인치 대의 수많은 휴대용 디스플레이가 있습니다. 크기 자체가 너무 작다는 감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로 해상도가 1920픽셀, 즉 FHD 급이 많습니다. 이건 조금만 써도 눈이 아파 옵니다.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가 상향 평준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기준이 이미 올라가 버린 상태죠.
(완전 최신 제품들을 보면 4K에 OLED까지 쓰는 제품들이 있는 것 같은데... 궁금하기는 합니다만, 제가 이 제품을 살 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유명한 브랜드들에서는 그런 제품들이 나오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실제 이 그램 +view 를 사서 세팅을 해보면 이거다 싶은 감정이 생기는데요. 해상도나 컬러 표현 면에서 기계가 가진 능력이 좋은 것도 물론 있지만 거기에 더해, 맥이 알아서 이 제품의 컬러 프로파일을 캐치하고 적절히 보여줄 수 있게 세팅을 해줍니다. (원하는 해상도로 HDPi를 활성화하기 위해 BetterDisplay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이건 이 디스플레이가 아니더라도 이미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니... 저에겐 굉장히 경험이 좋았던 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다음은 모니터 스탠드입니다.


쿠팡에서 산 제품인데요. "마그네틱 포터블 모니터 태블릿 스틸 거치대" 라는... 굉장히 직관적인건지 복잡한건지 모를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비슷한 제품이 많고 저도 여러개 사 봤는데요. 이게 저는 너무 마음에 듭니다. 마그네틱을 이용해서 지지하는 거치대들은 꽤 있지만, 이 제품이 다른 건 각 관절 부위를 육각 렌치로 직접 조여서 조정한다는 점이에요. 어느 정도 힘을 견딜 수 있는지를 직접 조이고 풀면서 세팅해 보면 볼수록, 점점 자신있게 세팅할 수 있게 됩니다. 거기다... 그 육각 렌치를 모니터 발에 끼울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이 렌치라는 게 집에 수십 개 돌아다니는데 결국 어떤 게 어떤 건지 항상 꼽아보면서 확인하게 되더라구요. 근데 이 제품은 전용 렌치를 발바닥(?)에 꼽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제조사의 고심이 엿보입니다. 그만큼 결과물이 좋은 것 같아요.

키보드와 마우스입니다. 키보드의 경우에는 부피가 작고 아이패드에도 사용할 수 있는 MX Keys를, 마우스는 애플의 매직 마우스입니다. 마우스가 좀 고민이었는데, MX Master 3세대도 가지고 있기는 해서 그걸로 할까 한참을 고민했어요. 하지만 결국에는 손에 익고 부피도 작은 매직 마우스를 가지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직 마우스의 제스처와 스크롤 방식에 가장 익숙해져 있어서요.

마지막은 애플 홈팟 미니입니다. 한국에는 아직 안 파는 걸로 아는데... 이거 교토에 있을 때 중고로 6만원? 인가에 사 왔습니다. 원래 중고품이라 싼 데다가 그 중고 판매 업체가 면세까지 되는 곳이었어서 많이 싸게 샀네요. 이거 사실 꼭 필요하냐고 물으면 애매한데요. 개인적으로는 만족도가 높습니다. 대부분의 작업에서 싱글 모니터를 좋아하는 편인데, 그러면 맥북 리드를 닫고 사용하게 되기 때문에 소리가 먹먹하게 들리곤 합니다. 이 제품 하나를 세팅하면 애플 기기 전부가 이 스피커를 사용할 수 있게 되니까, 여러 모로 좋습니다.
접으면 이런 느낌입니다.



아주 컴팩트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만, 거의 타협하지 않은 것 치고는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랩탑과 마우스만 제외하고 캐리어에 넣어서 운반하곤 합니다. 기내용 캐리어에 넣어도 그렇게 큰 자리를 차지하진 않더라구요.
매번 한 도시에서 짧으면 4박, 길면 7박을 하곤 합니다.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 처음 하는 것이 이 세팅을 펼치는 것인데요. 마음에 드는 도구들을 마련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고 용기가 생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여행길에서 함께 재밌는걸 많이 만들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이렇게도 활용한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