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끝이 정해지지 않은 여행

노마딕 메이커 2025. 12. 8. 17:39

작년 2024년 여름, 아주 오랜만에 혼자 해외를 나갔습니다. 당시엔 해외를 가고 싶었다기보다 집에 있는 게 너무너무 답답했던 것 같습니다. 도망치듯이 떠났습니다. 카메라 한 대 들고 길게 연차를 내서 열흘 동안 교토와 오사카 여행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나와서 좀 두렵고 낯선 것도 있었지만 참 좋았어요. 그런데 교토에 있다가 오사카로 넘어오고서부터 조금씩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평화롭던 도쿄에 비해 분주하고 시끄러운 오사카의 분위기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귀국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돌아가기가 너무 싫었습니다. 두렵다고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퇴근길, 서울 광진구

 

이듬해, 그러니까 올해죠. 몸담던 회사에 있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항상 야근을 하던 회사에 7년을 있었으니까요. 퇴사하겠다고 하면 주변에서 말릴 줄 알았는데 '잘 생각했다. 그럴 만하다. 고생했다'고 하더라구요. 옆에서 보기에도 힘들어 보였나 봅니다. 재취업은 당분간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행에서 뭘 찾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늦기전에 한번은 제대로 떠나 보고 싶었어요.

 

우선은 귀국일에 대해 초조해하지 않는 여행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 달을 한 도시에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작년 좋은 기억이 있었던 교토에 방을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상당히 긴장이 되더라구요. 뭘 걱정했는지도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요. 그냥 그렇게 오래 혼자 외국에 있는 경험 자체가 처음이라서 그랬던 거 아닐까 싶어요. 막상 가고 보니 별로 무섭거나 어려운 게 있지는 않았습니다. 첫 한 주는 적응하느라 느리게 흐르는 것 같더니, 나머지 3주는 마치 1주처럼 슉 하고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이 다가오자 익숙했던 그 감정이 몰려왔습니다. 돌아가야 한다는 초조함이요. 아무리 길어도 끝이 정해져 있으면 비슷한 감정이 되는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산책, 교토 후시미구.

 

그래도 다 똑같은 건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한달씩 살다 보니까 숙소 주변의 동네에는 충분히 익숙해지는 것 같았어요. 주변 도시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거나 1박 2일 여행을 갈 때도 있었어요. 그러다 지치면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한국에 있는 집이 아니라 달방으로 빌린 숙소더라구요. 숙소 근처에 도착하면 되면 주변 환경을 둘러보지 않고도 발이 알아서 갈 곳을 찾아가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한달이나 있다 보니 그냥 관광만 하기보다는 느낀 점을 쓰기도 하고 한자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조금의 루틴을 만들어 놓으니, 그 루틴을 마무리한 후에 한가롭게 주변을 산책하며 좋아하는 야키토리집이나 마트를 갈 때의 그 작은 해방감들이 참 좋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서울의 많은 기억은 퇴근의 기억이더라구요. 도시는 출퇴근의 풍경으로 남는구나. (워킹 홀리데이를 해봤어야 했는데.)

 

그렇게 2025년 9월의 교토 생활이 내 안에 남고, 수천년 교토의 역사에 극히 작은 일부에 제가 참여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만월, 교토 후시미구

 

한국에 돌아오고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만, 결국은 2개월만에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언제 해볼수 있을지 모르는, 이번에는 정말로 귀국편 없이 가는 여행을 해보고 싶었어요. 며칠 동안은 정말 관광객처럼 다녔습니다. 그러다 조금씩 기억이 나는 거에요. 교토와 어떤 식으로 친해졌는지. 그래서 정신을 부여잡고 열흘만에, 이번 여행의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3가지에요.

  1. 한 도시는 가능하면 1주일 이상 경험하고, 마지막에는 그 도시에 관한 글을 쓴다.
  2. 숙소 주변 지리에 가능한한 빠르게 익숙해진다. (아침 조깅 포함해서 첫 이틀 내에 5회 이상 산책)
  3. 하루에 최소 4시간, 필요에 따라서는 그 이상 글쓰기 혹은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동하는 날만 제외)

가능하면 앞으로도 계속 여행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은 필요에 따라서 늘리면서 해 보려고 합니다. 이 블로그도 자연스럽게 그에 맞춰 어느 정도는 정기적으로 올릴 예정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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